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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는가?

댓글 : 1 조회 :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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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사건이란 1885년 3월 1일~1887년 2월 5일까지  영국군이 조선의 영토였던 섬 거문도를 2년여 간 무단으로 점령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원인을 보자면 1860년 블라디보스톡을 점령한 러시아는 보다 더 좋은 부동항의 위치를 갖는 조선에 진출하여 극동아시아 방면으로 남하하고자 했다. 

1884년 마침내 러시아는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였고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외교고문인 독일인 뮐렌도르프의 활약으로 오랜 청나라의 간섭에 지친 조선 정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조선은 서서히 친러성향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다급해진 청과 일본은 조선에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라고 압력을 가하였고 (이때 집필된 유명한 서적이 조선책략)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러시아와 오랜 대립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 역시 이를 심각한 상황으로 보게 되었다.

청과 일본, 러시아에 비해 조선에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던 영국이었지만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는 꼴을 보기 넘 싫었기에 결국 강경책을 택하여 발빠르게 군대를 보내 조선 해안을 정찰, 거문도를 선택하여 점령하였으며 엄연히 남의 나라 영토임에도 거문도를 발견한 선원의 이름을 따 해밀턴 항이라고 지명하는 패기를 부렸다.

게다가 영국은 거문도에 영국 국기를 설치하고 섬에 주둔군을 늘리고 요새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으로 군기지화 작업에 들어갔는데 이때 노동력은 거문도에 살던 조선 주민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차출하였다고 한다.(영국군은 거문도 주민들과 매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했고 노동력을 제공하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였기에 탐관오리에 지쳐있던 주민들에게 오히려 큰 인기를 누렸음. 당시 조선 지방관의 횡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음.)

그렇다면 거문도 사건이 벌어졌을 때 조선은 어떤 대응을 하였는가. 조선은 거문도 사건이 발생한 뒤 영국 공사관의 통해 4월 6일에 뒤늦게 통보를 받았는데(통보도 영국이 해밀턴 항을 점령했음!이라고하는 바람에 조선은 머야 그게 어딘데???라는 혼란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실파악이 더늦어졌다.)이는 주변 청, 일본, 러시아 보다 한참 늦게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조선 정부는 뮐렌도르프와 엄세영을 파견하여 영국과 교섭에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이후 청과 러시아 영국간의 3국 상호 합의에 끌려다니기만 하였다.

조선을 보호국이라 자청하였던 청은 러시아의 방비를 위해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은근 인정하고자 하였으며 일본 역시 러시아의 남하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 영국의 행위를 관망하였고 미국마저 영국에 동조함으로서 거문도는 영국의 영토로 빠지기 일보 직전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여기에 제동을 건 사람은 뜻밖에 청나라의 외교대신이자 양무운동의 책임자 이홍장이었는데 조선 속국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 영토를 제각기 점령할 것을 두려워하여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본래 조선보다 청과 교섭하여 거문도를 조차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은 이홍장의 반대로 교섭이 더디게 되자 비로소 조선과 직접 교섭에 나서기로 하였다.

영국은 조선에 거문도를 영국군 기지로 임차하되 1년 5000파운드를 제공하겠다 제의하였으나 조선은 돈으로 물건도 아니고 영토를 거래하는 것을 불가하다며 교섭을 거부하였다.

거기에 러시아가 영국의 행위를 대대적으로 비난하였고 청의 이홍장이 이 물결에 참여하면서 국제정세는 영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영러 협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거문도를 점령할 명분마저 부족해졌다. 마지막으로 거문도를 요새화하는데 생각보다 고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결국 영국은 거문도를 깨끗히 포기하였고 순순히 거문도에 주둔했던 영국군은 빠르게 철수해버림으로서 거문도 사건은 끝이 나게 된다.

영국은 거문도를 조차한 후 군 요새기지이자 조선개항이후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매년 5000파운드를 조선에 제공한다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으니 이를 만약 받아들였다면 조선의 경제는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편 조선은 거문도 사건을 계기로 청나라의 내정간섭은 더욱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며 후에 임오군란, 갑신정변으로 절정을 찍는다.








이 게시물에 달린 코멘트 1
육각프랑스 05.02 05:34  
러시아때매 영일동맹은 무조건 이뤄졌을거니 일본이 조선을 먹는건 막기 어려웠을거고 영국이 부산을 할양받는식으로 갈라나